[글마당] 아, 네가 가을이라면
서녘 숲속으로 들어섰다. 어스름 황혼 자줏빛하늘 아래 빽빽이 서 있는 키 큰 나무들 어두워진 녹색으로 깊어가고 있다. 시커먼 웅덩이에 피어난 포도나무 덩굴 붉은 과육 피처럼 넘쳐 흐르며 어둠은 만조가 되어 밀려온다. 불타는 날개 달고 마구 떨어지는 척박한 잎사귀들 상처 난 가슴으로 나를 기다린다. 항상 으르렁대는 가련한 나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나 자신에게 한 모든 일은 되돌릴 수 없는 것임을, 들을 수는 없지만 울려오는 영원에 가까운 소리 하얀 서리 되어 내 안에 쌓인다. 아, 네가 가을이라면 이춘희 / 시인·롱아일랜드글마당 가을 포도나무 덩굴 어스름 황혼 서녘 숲속